인도 방랑
후지와라 신야
-본문 중에서-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로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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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머리에 시의 형식으로 쓰여진 부분을 읽고, 멍해졌다가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가 그만 홀딱 반해버렸다.
그의 여행은 타인의 눈으로 타자를 관찰한다. 관찰한다. 철저하게 관찰한다. 대상의 본질이 신야의 몸에 새겨질 때까지 관찰한다.
긴 시간 한 마을에 머무르며 사람들을 사귀고 함께 살며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펼쳐지는 자연과 그 자연을 토대로 형성된 문화와 규율 속에 마치 자연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의 관찰이 여느 여행 작가의 관찰과 다른 점을 신야는 자연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동물들 속으로 직접 들어가 함께 살면서 소통하면서 관찰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먹고 자면서 동화되면서도 자신의 눈 -타자로서의 눈-을 잃지 않고 바라본다. 철저히 여행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신야는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한다. 멀찍이 서서 ‘흠, 멋있군.’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밑바닥 서민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그는 시장을 자주 찾아 다니고, 거지들과 사귀고, 창녀촌을 헤메고, 술집에서 독주에 취하고,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다가 아기를 사산하는 장면을 보기도 하고, 갠지스의 강가에서 인간을 태운 재를 맛보기도 한다. 그는 그 모든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겪어내면서 열린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의 마음에는 정답이 없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만약 인도에 가서 본 것을 이야기 한다면 어떻게 할까 상상해 봤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데 인도를 저렇더라.’ 하고 말했을 것이다. 내게 익숙한 것을 기준으로 비교하고 판단하고 왜곡했을 것이다. 신야는 대단하다. 그토록 백지같은 눈을 가지고 있다니!
또한 놀라운 것은 그의 문장이다.
‘어리석음에 의해 지탱되는 인간이 더 강인하고 더 오래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와 같이 실상을 보고 깨달은 바를 너무도 명료하고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해낸다. 신야는 그대로 시인이다. 내가 평생 한 번만이라도 쓰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 표현과 문장을 이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매 쪽마다 흩뿌리듯 써갈겨 놓았다. 참 질투나는 재능이다.
스물 다섯 청년 시절에 뭔지 모르지만 온갖 것들에게 엉망으로 지기위해서 갔을지 모르는 인도.
인도의 선명한 실상들.
그 실상들을 고스란히 가져올 수 없어서.
언어로 바꾸어 가져와 봐야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신야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글을 보완하기 위해서.
먼저 죽어가는 왼쪽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신야.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뒷 면에 어둠고 넓은 공간이 있다.
손을 넣으면 쑥 들어가 나를 통째로 집어 삼킬 것 같은 어두운.
마치 저승과도 같은.
사진 한 장 한 장이 대단한 공간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시간도 느긋이 흐르고 있는 듯 하다.
여행을 하고 싶다. 신야처럼 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타자였던 세계를 받아들여 내 삶을 넓게 깊게 명상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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